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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중_비욘더게임] “영웅이 나왔으면…” 했는데 모두가 영웅이 된 경기

[골닷컴] 제주 유나이티드는 K리그에서 유일하게 육지를 벗어나 섬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이다. 아름다운 제주도가 홈이니 축구 할 맛 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히 휴가철인 여름엔 더 하다. 시즌 절반을 차지하는 원정 경기를 할 때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원정지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제주도로 복귀해서도 공항에서 클럽하우스가 있는 서귀포시까지 1시간 이상 차로 이동해야 한다. 다른 팀은 1년에 2번 정도 하는 이동이지만, 제주는 시즌의 절반을 할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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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저녁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2 27라운드 FC서울과의 원정 경기 킥오프 전에 만난 제주 남기일 감독은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제주에 있다 보면 해외에 있는 것 같다. 왔다 갔다 이동에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게 사실이다. 최근 흐름이 좋지 않은 게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쓴웃음이었다.

이어 “피서철에는 제주가 휴양지다 보니 어딜 가도 사람들이 몰려있다. 공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경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저희를 조금 힘들게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라며 심리적인 측면을 이야기했다. 제주의 최근 페이스를 보면 일리가 있다. 6월 A매치 기간이 끝난 후 첫 경기였던 6월 18일부터 8경기에서 1승 2무 5패로 확연히 떨어진 흐름을 보여줬다. 순위만큼이나 선수들의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정신적으로도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결국 이날은 과감한 로테이션을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출전 선수 명단 자료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놀라움마저 들었다. 부상에 코로나19 이슈가 더해져 스쿼드 변화가 불가피했다. 임대생 김근배 골키퍼는 시즌 첫 출격 명령을 받았고, 미드필더 윤빛가람은 정확히 4개월 만에 그라운드에 등장했다. 로테이션에 따른 포지션 변화도 있었다. 최전방 공격수 김주공은 한 단계 아래에서 뛰었고 측면의 조성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기일 감독의 목표는 명확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영웅이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뒤에서 묵묵히 준비했던 선수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원정 승점을 기대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예상대로 홈 팀 서울이 몰아붙였다. 왼쪽 측면의 김진야는 가운데로 치고 들어와 오른발 슈팅을 때렸고, 골대를 강타했다. 김근배가 손쓸 틈도 없었다. 이어 기성용의 직접 프리킥은 반대쪽 골대의 모서리 부분을 강하게 때리고 벗어났다. 제주는 간간이 역습을 시도했지만 영양가는 없었고, 버티면 다행일 정도의 전반전은 그대로 끝났다.

제르소한국프로축구연맹

후반은 달라졌다. 남기일 감독이 활약을 기대한다고 콕 집었던 김주공이 헤더로 역습 상황에서 선제골을 터트렸다. 자신이 직접 서울의 공격을 차단한 뒤 제르소에게 침투 패스를 넣어줬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완성했다. 도움 하나를 적립한 제르소는 몇 분 뒤, 오른발도 잘 쓴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림 같은 슈팅으로 서울 골망을 흔들었다. 결국 제주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확실한 역습을 만들어내며 4경기 만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경기 후 남기일 감독은 한숨 돌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선수들이 열심히 해줘서 골도 넣고 실점하지 않았다. 최근 경기에 비해 완벽한 경기였다”라고 평가한 뒤 “경기 전에 영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새롭게 뛴 선수들 모두가 영웅이다”라며 칭찬했다.

최근 주장단까지 교체하며 부진을 만회하고자 했던 제주는 서울 원정을 승리로 장식하며 반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 다행히도(?) 제주의 눈앞에는 홈 3연전이 기다린다. 포항 스틸러스, 수원삼성, 울산현대로 이어지는 3경기지만 남기일 감독의 고충이었던 이동의 부담에선 벗어난 채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어쩌면 이 3연전은 올 시즌 제주가 노리는 ACL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향방의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남기일 감독의 족집게 전략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할 타이밍이다. 언제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축구를 유지하며 높은 곳으로 향했던 남기일 감독이 무더움이 최고조로 달하는 8월, 눈앞에 주어진 기회를 살릴 수 있을지 기대된다.

제주한국프로축구연맹

#비욘더게임(Beyond the Game)은 축구 경기 그 이상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글 = 김형중

사진 =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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