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정리: 김형중 기자 =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의 우승 트로피는 서독의 몫이었다. 하지만 대회의 주인공은 살바토레 스킬라치였다.
"잠 자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탈리아의 스킬라치가 결승 선제골을 터트린 우루과이와의 16강전 직후 기자진에게 했던 말이다. "그러니깐 나 깨우지 마세요, 이 꿈을 더 즐기고 싶어요!"
스킬라치의 이런 반응은 이해가 갈 만하다. 팔레르모 지역의 이탈리아 하부 리그 메시나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가난한 무명 선수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1989년 8월에 세리에A 데뷔전을 치렀고, 월드컵 개막 3개월 전에서야 A매치 첫 출전을 기록한 선수였다. 이탈리아 대표팀 월드컵 스쿼드에 포함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당시 그는 대회 내내 벤치에만 앉아 있어도 기쁠 거라 말했다.
스킬라치는 아주리 군단의 6번째 공격 옵션이었다. 앞에는 지안루카 비알리, 안드레아 카르네발레, 알도 세레나, 로베르토 만치니, 그리고 로베르토 바지오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스킬라치는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1989/90 시즌 유벤투스로 이적한 후 21골을 터트리며 폼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유벤투스 이적 직전에도 제넥 제만 감독의 지도 아래 메시나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바 있다. 1989/90 시즌 세리에A에서 15골을 터트렸는데 스킬라치보다 많은 골을 터트린 선수는 마르코 판 바스텐(19골), 로베르토 바지오(17골), 디에고 마라도나(16골) 뿐이었다.
Getty/GOAL"축구선수로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곤 하는데, 제게 그 시기는 우연히도 월드컵 기간이었어요. 누군가가 1990 이탈리아 영웅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았지요" 훗날 스킬라치의 고백이다.
스킬라치의 활약에는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제글리오 비치니의 역할이 컸다. 스킬라치가 포함된 월드컵 스쿼드를 발표할 때부터 이탈리아 전역을 놀라게 했지만, 조별예선 첫 경기 오스트리아전 때도 그는 또 한번 놀라운 선택을 했다. 월드컵 전까지 A매치 1경기 출전에 불과했던 스킬라치는 당연히 벤치에서 출발했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자 비치니 감독은 교체 카드로 로베르토 바지오 대신 스킬라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적중했다. 스킬라치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 뿐이었지만 그는 교체 투입 후 단 3분 만에 비알리의 크로스를 머리로 정확히 받아 넣으며 이탈리아에 결승골을 선사했다.
"모든 것이 미쳤었지요"
1차전 승리의 주역이었지만 미국과의 2차전에서도 벤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카르네발레를 대신해 후반 6분 만에 경기장을 밟았다. 이어 체코 슬로바키아와의 3차전에서는 처음으로 베스트 11으로 선발 출전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 9분 만에 팀의 첫 골을 터트렸다.
Getty/GOAL스킬라치의 득점 행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6강 우루과이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터트린데 이어 아일랜드와의 8강전에서도 결승골을 작렬했다. 로베르토 도나도니의 슈팅이 골키퍼 맞고 나오자 스킬라치가 마무리 지었다.
위치 선정의 정석이었다. 누군가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에 있다고 하면, 그건 스킬라치였다. 문전에서 정확한 위치 선정이라고 하면 필리포 인자기를 떠올리지만, 이전 세대에선 스킬라치가 대명사였다.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에서도 이 득점 패턴이 이어졌다. 한 차례 슈팅이 골키퍼 맞고 흐르자 스킬라치가 순간적으로 달려들며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경기 막판 아르헨티나 클라우디오 카니지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스킬라치는 비통에 빠졌고 라커룸에서 눈물을 흘리며 시가를 피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월드컵은 끝나지 않았다. 잉글랜드와의 3, 4위전이 남았고 그의 목표는 골든부트였다. 경기 막판 페널티킥을 얻은 이탈리아는 스킬라치의 6번째 득점으로 잉글랜드를 꺾고 월드컵 3위에 올랐다. 동시에 스킬라치의 월드컵도 막을 내렸다.
월드컵 이후 그의 A매치 득점은 한 골을 더 추가하는데 그쳤다. 유벤투스에서도 설 자리를 잃었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지만 부상과 개인적인 이유로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다. 훗날 스킬라치는 월드컵에서 받은 스포트라이트의 무게감을 극복하는 게 어려웠다고 밝혔다. 커리어 말기에는 미디어의 관심을 피하고자 일본으로 넘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Getty/GOAL"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껐습니다. 모든 것을 꺼버렸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전 기본적으로 굉장히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 거울을 봤는데 인생에서 큰 일을 해내고 축구 역사에도 작게나마 획을 그은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스킬라치는 다시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TV에도 자주 모습을 내비쳤고 월드컵 이후 자존감이 낮아졌던 시절을 회상하는 자서전도 썼다. 또한 고향인 팔레르모에 스포츠 센터도 건립해 시칠리아 지방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제 그의 축구 인생에 후회는 없다.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월드컵 덕분에 해외에 나가서도 사람들이 절 알아봐 줍니다"
스킬라치는 1990 이탈리아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