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이 돌연 감독 사임을 발표했다. 그것도 기자 회견이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서! 당연히 헤르타에선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미하엘 프리츠 단장은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아침에 클린스만 사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랬다"라고 당혹스러움을 전했다. 헤르타 수비수 데드릭 보야타는 독일 타블로이드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충격이다"라고 전했고, 측면 공격수 자바이로 딜로선 또한 "우리에게 큰 손실이다. 지금 우리 구단은 당연히 혼돈에 빠졌다"라고 토로했다. 헤르타 미드필더 페어 셸브레드 역시 "비디오 분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러운 사임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헤르타 내부에서 클린스만이 사임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최대 주주인 라스 빈트호르스트 한 명 밖에 없었다. 애당초 클린스만이 헤르타에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빈트호르스트 때문이었다(빈트호르스트가 최대 주주 자격으로 클린스만을 이사회 멤버로 임명시켰다). 그런 빈트호르스트조차 "하루 전에 클린스만으로부터 사임 의사를 전달받았다. 클린스만의 결정에 깊이 유감을 표한다"라고 밝혔을 정도다.
헤르타 출입 기자들도 하나같이 강한 어조로 클린스만의 행보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토로하고 있다. 스포츠 전문지이자 평소 담담하게 소식들을 전달하는 '키커'지는 "이기적인 사임(Ein egoistischer Abgang)"이라고 헤드라인을 뽑았다. 선수 시절 독일 대표팀에서 클린스만과 알력 다툼을 펼치다가 유로 1996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위대했던 선수 경력에 있어 유일한 오점을 남긴 바 있는 독일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로타르 마테우스는 '빌트'지를 통해 클린스만을 가리켜 '모든 걸 하거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권력자"라고 지칭하면서 "위르겐은 많은 다른 공격수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경력 내내 매우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나에게는 물론 팀과 클럽 모두에게 해당했다. 그에게 있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는 건 언제나 그 자신이었다. 이제 헤르타 팬들은 단순히 충격을 넘어 그에 대해 실망하게 됐을 것이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가 사임한 이유는 그 스스로 확실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크게 두 가지로 현지 언론들은 추측하고 있다.
첫째, 키커지에 따르면 그는 단순한 이사회 임원을 넘어 기술 이사직을 수행하고 싶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그는 헤르타 구단 측에 2년 계약을 요구했지만 베르너 게겐바우어 회장과 프리츠 단장은 현재 팀 성적도 그리 좋지 않고 이런 논의를 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니 조금 더 지켜보고 나중에 결정하자고 답변한 것. 이에 기분이 상한 클린스만이 감독 사임이라는 강수를 던졌다는 게 키커지의 주장이다.
실제 그는 페이스북에 남긴 사임 이유에 대해 "구단 내부적인 신뢰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감독으로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도 없고, 무거운 책임을 감당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라고 밝혔다. 직간접적으로 구단 보드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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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는 사임 발표 하루 전에 가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서 헤르타 팬들의 강도 높은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이 역시 그가 감독 직을 그만두게 된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는 분석들이 있다. 애당초 그는 감독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원래 헤르타가 고려한 1순위 감독은 베를린 태생으로 헤르타 유스 출신이자 프로 데뷔해서 선수 경력을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헤르타에서 뛰었던 바이에른 뮌헨 前 감독 니코 코바치이다. 하지만 코바치가 바이에른에서 경질된 이후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휴식을 취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그나마 헤르타 보드진 중 지도자 경력이 있는 클린스만이 울며 겨자먹기로 헤르타 감독 직을 임시로 맡은 것이었다.
솔직히 성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클린스만 부임 이전까진 헤르타는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3승 2무 7패 승점 11점으로 잔류 마지노선인 15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시 강등권인 16위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승점은 물론 골득실까지 동률로 다득점에서 앞서고 있을 뿐이었다(헤르타 17득점, 뒤셀도르프 15득점). 하지만 클린스만 부임 이후 분데스리가에서 3승 3무 3패로 나름 반등에 성공했다.
심지어 일정도 그리 쉽지 않았다. 9경기를 지도하는 동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엘 레버쿠젠,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바이에른 뮌헨, 볼프스부르크, 샬케 같은 유럽 대항전에 진출한 팀들을 상대했다. 지나치게 수비적인 전술을 구사했기에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으나 어차피 이번 시즌 헤르타의 목표는 분데스리가 잔류였기에 실리적인 선택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당연히 클린스만 입장에선 성적이 나쁜 게 아님에도 비판을 듣는 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미 사임한 마당에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헤르타라는 팀이 클린스만 재임 기간에 너무 많은 부분에서 그의 입맛에 맞게 개편됐다는 데에 있다. 그는 헤르타 지휘봉을 잡고 10주가 채 되기도 전인 76일 만에 사임을 발표했는데, 이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먼저 헤르타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본인의 아들이었던 조너선 클린스만과 불화가 있었던(결국 헤르타 2군팀을 전전하던 조너선은 2019년 여름, 스위스 구단 상 갈렌으로 이적했다) 솔트 페트리 골키퍼 코치를 경질하고 안드레아스 쾨프케를 선임했다. 하지만 쾨프케는 아직 독일 대표팀과 계약 문제가 있었기에 정상적으로 골키퍼 코치 직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이에 클린스만은 임시적으로 2군 골키퍼 코치인 막스 슈타인보른을 1군으로 승격시키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슈타인보른은 만 31세의 젊은 코치로 헤르타 주전 골키퍼 루네 야르슈타인(만 35세)보다 4살이나 더 어리다. 게다가 야르슈타인은 페트리 코치와 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장 골키퍼 포지션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게다가 헤르타는 클린스만의 진두지휘 아래서 7800만 유로(한화 약 1027억)의 이적료를 지출하면서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를 시작으로 뤼카 투사르와 크시슈토프 피옹텍, 그리고 마테우스 쿠냐를 동시에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유럽 5대 리그 중 겨울 이적시장 최다 이적료이자 분데스리가 역대 겨울 이적시장 최다 이적료에 해당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보강은 자연스럽게 기존 선수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지난 시즌 헤르타에서 가장 많은 골(11골 5도움)을 넣으면서 에이스로 활약했던 공격형 미드필더 온드레이 두다는 클린스만의 외면을 받으면서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노리치 시티로 임대를 떠났다. 2014년부터 헤르타에서 활약한 베테랑 공격수 살로몬 칼루 역시 클린스만 부임 이후 전력에서 배제되다시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베를리너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곳에 며칠이나 몇 달 있었던 게 아니라 6년 가까이 있었고, 항상 팀을 위해 골을 넣었다. 특별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이건 존중에 관한 것이다. 현재 나에 대한 존중이 지나치게 부족하다. 이런 대접은 처음 받는 일이다. 심지어 내가 뛰던 당시 위대한 팀이었던 첼시조차 이러지 않았다"라며 노골적으로 클린스만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심지어 헤르타 유스 출신으로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미드필더 아르네 마이어조차 아스카시바르와 투사르 영입이 연달아 이루어지자 팀을 떠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에 프리츠 단장이 직접 설득에 나서 간신히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이어는 독일 99년도 세대에선 유스 시절 (현 레버쿠젠 에이스이자 독일 대표팀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한) 카이 하베르츠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던 재능으로 2017/18 시즌 후반기부터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으나 이번 시즌 개막을 앞두고 무릎 부상을 당해 전반기 내내 2경기 출전에 그친 미완의 대기이다. 당연히 헤르타 팬들 입장에선 무조건 지켜야 하는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클린스만은 기존 선수들의 반발을 일으키면서까지 본인의 주도 하에 보강에 나섰다. 여기까지는 감독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그가 책임도 지지 않은 상태로 팀을 떠났다는 데에 있다. 특히 쿠냐의 경우 헤르타 이적이 확정됐을 당시 이미 브라질 대표로 콜롬비아에서 2020년 런던 올림픽 남미 지역 예선을 치르고 있었기에 클린스만의 지도를 아직 받아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본인을 영입한 사람이 본인이 오기도 전에 감독을 그만둔 셈이다. 상당히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더 웃긴 건 클린스만이 이대로 헤르타와 인연을 끝내는 것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는 감독만 사임한 채 이사회 임원 일은 계속할 예정이다.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대체 무슨 낯으로 기존 헤르타 보드진들과 회의 등을 진행할 예정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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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가 감독 직을 사임하면서 헤르타의 대형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헤르타는 빈트호르스트의 투자를 바탕으로 독일 수도팀에 걸맞는 슈퍼 클럽이 되겠다는 야망에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어긋나 버렸다. 원래 헤르타는 이번 시즌까지 클린스만으로 보내면서 잔류에 성공한 이후 코바치 체제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해나갈 계획이었으나 클린스만의 사임과 함께 시즌 중간에 새 감독부터 찾아야 할 판이다.
그는 감독 선임부터 상당한 화제를 일으켰다. 그가 독일을 대표하는 스타 공격수였고, 독일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 감독 직을 수행한 경력(비록 능력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긴 했으나)이 있었기에 그가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헤르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다름 아닌 클린스만이었다.
이후 그는 공식 창구가 아닌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페트리 코치를 경질했을 당시에도 페이스북을 창구로 활용했고, 라이선스 문제가 있었을 때조차도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해명하고 나섰다. 결국 마지막까지도 페이스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단의 의중 없이 사적으로 일들을 처리해 나간 클린스만이다. 당연히 그에게 비판이 쏟아질 수 밖에 없다. 만약 헤르타의 대형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는 두고두고 베를린에서 역대 최악의 빌런으로 자리잡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빌트'지는 벌써부터 헤르타에 대해 "모두가 패자"라고 평가하고 있다.